김주희의 작업은 흩어지고 본래의 맥락을 잃은 것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쉽게 소비되는 언어, 단순한 도식으로 굳어진 형태, 정상에서 벗어난 몸의 이미지를 불러와 다시 배치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틈과 어긋남을 굳이 메우지 않는다. 작가에게 캔버스는 현실에서 자리를 잃고 밀려난 것들이 다시 발을 디딜 수 있는 영토다. 작업은 그곳에서 자라난 살의 세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정해진 순서를 따르지 않는 방식을 함께 탐구한다. 최근 작업은 구체적 이미지를 재현하는 방향에서 벗어나고 있다. 정해진 기호를 따라가듯 진행되는 구상 작업보다, 길을 헤매는 산책과 같은 추상 작업이 작가에게 더 흥미롭기 때문이다. 자신의 추상 작업을 계속 자라나는 것으로 여기는 작가는, 구작 안의 기존 형상과 새로 태어난 형상이 서로 맞물리는 지점에 주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