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정지원
<밤의 사파리>
2024, 면에 잉크, 아크릴, 유채, 112×167cm
정지원은 소설의 문장을 회화로 번역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문장을 파편적으로 인용하고 붓질로 더듬는 과정을 통해 형태는 부서졌다가 다시 구축되기를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문장의 맥락은 점차 흐려진다. 그의 회화는 구체적인 것을 더듬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소설의 내용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며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낸다. 글을 읽을 때 머릿속에서 바로 상상되지 않는 장면들이 작업의 주된 소재가 된다. 〈밤의 사파리〉는 단숨에 이해되지 못하고 목구멍에 걸리는 문장을 곱씹고 이어 붙이며 오독을 시도하는 과정 자체를 방법론으로 삼은 작업이다. 언어의 표면에 몰두할수록 문장은 소설의 문맥과 멀어지고, 그 틈새 속에서 새로운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문장은 번역과 독해, 작가의 붓질을 거치며 변모한다. 검은 글자 아래에서 기의(signifie)는 예측 불가능하게 변주되어 결국 회화에 안착한다. 처음 시작한 문장으로부터 멀리 달아난 그림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기호가 되어 관람객의 오독을 기다리고 있다.